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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ife/여행

경주 안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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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계모임으로 경주 여행을 오게 되었다. 1박2일인데, 결혼도 하고, 애도 있으니, 챙길것도 많고 준비할것도 많왔다. 독채를 빌려서 저녁에 놀다가, 택시를 타고 경주 안압지로 출발하였다. 친구들은 다 와봤다는데, 나는 처음 가봤다.  가는데 난폭택시 탔는데, 순간 욱 했다. 차 막힌다고, 1차선에 내리면 않되냐고 한다. 미친, 쌍 욕나올뻔 했다. 기사님 존말 할때 입구까지 가자고 했다.

 

 

 

도착해서 입구에 매표소 사진이다. 개인당 2000원이다. 우린 10명이라 10장~~ 안압지는 밤에 야경을 보면서 산책하는 코스라 대부분 밤에 온다. 사진은 없지만, 입구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토요일이라 그런가. 사람 천지다. 경기 않좋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다.

 

 

매표소는 입구에 기계로 표를 뽑는다. 도움 주는 직원분이 카드를 주면 대신 뽑아주신다. 10잘 뽑아 주세요~~

 

 

인제 입장 해볼까나~~

가기전에 안압지가 먼가 알아본다.

 

역사

 

문무왕(文武王) 14년(674)에 궁전 경주 월성의 동쪽에 별궁으로 지어졌다. 호수 월지(안압지)는 별궁인 임해전에 붙어있는 일종의 유원지로, 거대한 인공 연못에 조경을 해놓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경주 월성지, 황룡사지, 국립경주박물관 근처에 있다.[1] 월성의 북동쪽 매우 인접한 곳에 있으며, 황룡사의 가까운 남서쪽에 있다. 대표적인 고대 한국 건축물 중 하나이며, 통일신라의 건축양식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들이 많이 나왔다.

월지 호수 서쪽에 임해전(臨海殿)을 세웠고, 여기서는 호수를 바라보며 연회를 즐기는 장소로 쓰였다. 신라가 멸망하기 직전인 931년 왕건서라벌을 방문했을 때 경순왕이 왕건을 임해전에서 접대하기도 했다. 특이점으로 임해전의 건물 구조는 이 없는 것을 제외하면 전형적인 사찰 가람 양식이다. 실제로 호수 안에서 불상과 불교 관련 유물이 좀 나오기도 했다.

월지의 형태는 곡선과 직선이 섞인 형상의 연못과 그 연못 속에 3개의 다양한 크기를 가지고 있는 섬을 설치[2] 섬 안에는 각종 진귀한 식물과 동물들을 풀어 놓았다고 한다.  섬의 곡선이 교묘하게 처리되어 있어서 절대 한 곳에서는 그 전체 모습이 다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보니 별 달리 지루한 것이 없다. 월지 등장 이후 이런 자연스러운 굴곡이 있는 연못 형상이 한국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 일본 나라 쪽 연못에서도 유사점이 보이는데, 아마 이걸 본 일본 관료들이 일본에 있는 백제계 조경가들을 이용해서 만들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월지의 형태가 동아시아지도표현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가서 보면 잘 알기 어려운데, 위성지도를 통해 공중에서 바라보는 식으로 보면 관람자가 서는 곳 기준으로 봤을 때 호수의 윤곽선이 상당히 중국 동해안부터 한반도로 이어지는 해안선과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위에서 말한 3개의 섬은 제주도, 일본 등을 표현한 것이라고. 지도 모양으로 만든 게 맞다면 세계 최초의 입체 지도라고 한다. 국립경주박물관의 월지관에도 이런 이야기를 실어놓았다. 물론 한반도 지형처럼 우연히 닮은 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건 인공호수라..

신라가 멸망하고 점점 관리가 되지 않아 오랜 세월이 지난 구한말에는 건물은 터만 남고 호수 정도만 덩그러니 남았다가 일제강점기에 임해정이라는 전각을 새로 지은 적이 있으며, 결국 이는 복원을 위해 1977년에 북쪽에 있는 황성공원으로 옮겨졌다. 임해정의 현재 이름은 호림정이다.

월지는 경주 시내의 유일한 호수로, 원래는 발굴할 계획이 없었다. 다만 폐허가 되어 탁한 물만 고여있는 월지를 좀 더 깔끔하게 <임해전지>로 정리하려고 준설작업을 하다가 갑자기 수많은 유물이 나오는 바람에 1975년부터 2년 동안 발굴을 하게 되었다. 이 때 3만여점의 유물이 나왔는데 그 전 무덤 등의 부장품과 달리 실생활에서 사용하던 것이 많이 나왔다. 하단의 출토된 유물 단락 참조. 이 때 발굴한 유물들은 국립경주박물관 내부 월지관(구 안압지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는 신라시대의 연못과 석축, 그리고 세 동의 전각 정도를 지어놓은 상태. 입장료는 2015년 성인 기준 2천원.

월지에는 연꽃을 식재했지만 무차별적인 번식을 방지하기 위하여 우물 정자형 귀틀 안에다가 연꽃을 심었다고 한다.하지만 복원 과정에서 이걸 고려하지 않아 연꽃이 만발해졌다.

 

명칭

 

안압지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사실 안압지라는 명칭은 조선 초기의 기록인 동국여지승람동경잡기등에 기록된 것이다. 조선시대에 이미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들이 날아들자 안압지(雁鴨池)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1980년에 안압지에서 발굴된 토기 파편 등으로 신라시대에 이 곳이 월지(月池)라고 불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명칭은 반월성(半月城)(경주 월성)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며, 임해전의 이름도 원래는 월지궁이다.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여 최근 이곳의 정식 명칭도 오랫동안 써 왔던 '안압지' 대신 '동궁과 월지'로 변경되었고 각종 안내문에서도 변경된 명칭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워낙 안압지로 알려졌었던 기간이 길어서 아직도 안압지라고 부르고 표기되어있기도 하다. 이 문서는 안압지로 쳐도 들어올 수 있다.

다만 임해전이라는 명칭을 신라 시기에 아예 안 썼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삼국사기에는 동궁을 임해전(臨海殿)이라고 부른 기록이 있다. 바다에 가까운 건물이라는 뜻으로, 아마도 얼핏보면 안압지를 상징화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으며 해당 건물군들 주변 연못가에서 금동판불 등이 발견되면서 여기에서 일종의 의식도 했을 가능성도 있다.

 

복원계획

 

경주시는 장기적으로 안압지와 임해전을 복원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근처의 유적지(경주 월성, 황룡사, 경주 최씨 고택, 월정교 등)를 하나로 묶어서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려고 하는 분위기를 봐서는 언젠가는 복원할 기세다. 사실 경주에서 가장 원형대로 복원하기 쉬운 곳이 안압지이기도 하다. 유물이 많이 나와서 상대적으로 그 모습을 짐작하기 쉽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주변이 허허벌판이였으며 여기까지 도심이 확장되지 않은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거기에다가 근처 인공호수의 진흙 속에 묻혀있던 다양한 유물들이 발굴 직전까지 거의 천년을 버텨준 덕분에 그동안 발견된 적이 없는 그야말로 희귀한 유물들이 많이 보존되었다. 건물이 그대로 주저앉아 보존된 운 좋은 경우도 있었다고.

 

복원비판점

 

안압지의 두 전각이 우선 복원되었는데, 일부에서는 복원을 잘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각의 구조는 그럭저럭 원형의 모습을 최대한 반영하여 복원한 것 같지만, 안압지에서 출토된 화려한 금속 장식물들을 전혀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라시대의 궁궐 건축물은 금속 장식물로 사치를 부리는 것을 경계했던 조선시대와는 달리 서까래나 난간 끝에 일일이 금동으로 된 장식 마개 등을 달았고, 덕분에 햇빛이 비치는 날은 금빛으로 번쩍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물들이 출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원된 건물에는 하나도 쓰이지 않았다. 기와의 경우 섬세하게 조각된 장식기와를 활용한 것은 좋지만 마무리가 좀 어설픈 편이다. 단청의 경우에도 논란이 되는데, 신라시대에 어떤 단청을 칠했는지에 대한 자료가 없어서 결론이 안 나는 상황.

경주시는 신라왕경조성계획의 일환으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사업비 630억원(국비 441, 도비 57, 시비 132)을 들여 동궁(東宮)내 정전(正殿) 및 회랑 복원, 선착장 발굴 및 구조물 정비, 미조사 지역 확대 발굴 및 경역 정비 등의 복원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며, 올해부터 실시설계에 들어가 2015년 7월에 복원 공사를 발주할 예정이다.

 

출토된 유물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의 양이 삼만점에 달한다고 한다. 호수 안쪽의 진흙이 유물이 썩지 않고 원형을 보존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고대 건축물에 대한 정보가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수많은 건물 자재와 장식들이 나왔으며, 이런저런 고대의 생활상에 대한 기록이 이두로 써 있는 목간도 다수 출토되었다. 가령 '문호목간(門號)'이 있는데, 신라시대의 출퇴근 카드. 왕궁의 궁문별로 배치한 경비 인원을 목간에 기록한 다음, 그날그날 근무자의 실재 여부를 감독자가 직접 검사해서 경비의 이름 아래에 '있었다'는 뜻의 '재(在)' 자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 목간은 나중에 경비원이 봉급으로 받을 곡식을 청구하는 데 썼다. 이런 기록으로 동궁의 구조나 운영 방식까지 알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식해 같은 발효음식의 제조일자를 꼬리표로 달아놓은 목간, 의약처방 기록 목간 등 여러가지 일상생활에 쓰였을법한 목간들이 다수 나왔다. 기사

그 외에도 이런저런 물건이 많이 나왔는데 그 중에는 신라의 주사위 같은 이색적인 물건도 있으며, 나무로 된 남근 조각상 같은 것도 있어서 후손들의 불순한 마음(...)을 자극하고 있다.

다만 남근상은 종교적 목적으로 많이 사용된 물건이라는 걸 감안해야 할 것이다. 60년대 이전까지 한국 무속에서도 많이 사용했고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부터 시작해서 고대 그리스나 로마, 북유럽 등등 거의 세계 전부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만큼 광범위한 문화권에서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된 게 발견된다. ... 는 견해도 있는데, 여기에서 발굴된 남근상을 보면 실제로 많이 사용한 듯 손때가 타 있고, 결정적으로 종교적 목적의 남근상이라면 굳이 추가할 필요가 없지만 자위용 섹스토이라면 자극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가할 수 있는 돌기가 귀두 끝에 붙어 있다. 따라서 여기서 발굴된 남근상은 실제 섹스토이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상 안압지에 대해서 알아보왔다.

 

 

 

밤 하늘 아래, 연못가 사진한컷~

 

 

전체적인 모형물이다. 이렇게 네모낳게 넓게 한바퀴 돌면 안압지를 한눈에 볼수있다.

 

 

사진 좋고~

 

 

외국인도 볼수 있게, 지도로 설명도 되어있다.

 

 

영상관에서 대충 역사를 알수있다.

천천히돌면 30~1시간 정도 걸린다. 여인들 가족들 단위로 나들이하기 좋은곳이다.

 

 

주소는 여기다. 왠만한 사람들은 다 알것이다. 네이버 검색해서 찾아가시면 된다. 경주오면 한번식 가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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